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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보는 건 정말 중요해요"

“함께 살아보는 건 정말 중요해요”

佛 동거 커플들의 ‘동거의 이유’…“서로 충분히 안 다음 결혼해야”
“결혼이냐 동거냐보다 서로 충실한 관계 맺는 게 더 중요”

미디어다음 / 글, 사진 = 김미소 프랑스 통신원


대학 조교인 로렁스(오른쪽)와 그의 남자친구 올리비에(왼쪽).
“프랑스에서는 결혼하기 전에 함께 살아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서로를 충분히 안 다음에 결혼을 하면 오히려 이혼율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지난주 미디어다음과 만난 프랑스 여성 로렁스(29)의 말이다. 대학에서 조교로 일하고 있는 그의 남자친구는 레스토랑 사장 올리비에(34). 이들은 3년 전부터 파리 제11구에서 함께 살고 있는 동거 커플이다.

로렁스와 올리비에가 결혼이 아닌 동거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서둘러 결혼을 결정하는 것보다 함께 동거하면서 상대방을 더 충분히 알아가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 때문.

로렁스는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그건 서류상의 행정 절차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결혼이냐 동거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서로에게 얼마나 더 충실한 관계를 유지하는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동거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로렁스와 올리비에는 얼마 전 은행에서 15년 분할상환을 조건으로 주택대출을 받아 함께 지낼 작은 아파트를 마련했다. 대출금은 각자 반반씩 갚아 나가기로 했다.

이들은 “함께 행복하게 안정적으로 지내기 위해서 집이 필요하다면 결혼과 관계없이 공동명의로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다”며 “동거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결혼보다 안정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동거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한국 사회와는 달리 프랑스에서는 동거를 자연스러운 삶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젊은 프랑스 연인들이 생각하는 동거에 대한 속마음을 들여다봤다.

“결혼을 거부하기 때문에 동거하는 건 아닙니다”


나디아(왼쪽)와 에오완(오른쪽) 커플.
파리 제20구 구청 근처에 살고 있는 나디아(28·여)와 에오완(28)은 파리에서 나고 자란 동갑내기 연인이다.

고교 시절부터 친구인 이들이 함께 지내기 시작한 건 5년 전 영국 유학 때부터. 에오완이 머물던 바로 옆집에 나디아가 우연히 이사오면서 자연스레 둘만의 동거생활이 시작됐다.

“함께 살아보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각자의 사생활을 자유롭게 인정하면서 서로에 대한 충실함은 지켜나가는 것이죠. 서로 존중하고 더불어 사는 것, 그것이 동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결혼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그런 삶을 추구하는 것일 뿐입니다.”

에오완이 말하는 동거의 이유다. 그가 생각하는 동거생활이란 결혼을 거부하는 삶과는 다르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서로에게 얽매이기 전에 함께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동거생활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디아와 에오완은 2년 전 남미로 가서 6개월 동안 머물다 온 적이 있다. 지금도 주말이면 틈틈이 저렴한 항공권을 구입해 유럽 곳곳을 여행 다니기도 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되면 생각하기 어려운 생활. 둘은 내년부터 각자의 전공을 살려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도 갖고 있다.

“만약 우리가 결혼하게 된다면 달라지는 건 세금을 조금 덜 낸다는 것밖에 없을 거예요.” 나디아가 생각하는 동거 이유는 좀 더 구체적이다. 나디아는 “결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행복하게 잘사는 게 중요한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한다.

그는 “둘만의 행복을 포기하면서까지 결혼을 해야 할 뚜렷한 이유가 아직까지는 없다”고 말하고 “결혼과 동거를 기준으로 사랑을 가늠할 수는 없다”며 지금 함께 지내고 있는 생활에 큰 만족감을 나타냈다.

에오완 역시 “프랑스에서 결혼은 이미 상징적인 의미만을 지니고 있을 뿐”이라며 “세금 지원이나 아이 교육 문제를 위해서는 결혼이 조금 도움은 되겠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찾기는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행복한 가정 꾸릴 수 있어요”


불어강사인 컹디(오른쪽)과 고가구 제작자 로렁(왼쪽).
프랑스 중남부에 위치한 소도시 ‘오리야크’에 살고 있는 롤렁(42·여)과 마리로(29)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 만난 이들 커플은 5년 동안 함께 살며 두 아이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 결혼을 하지 않는 동거 커플이다. 대신 팍스(PACS, 시민연대협약)라는 제도를 이용해 동거계약 사실을 신고한 상태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굳이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팍스를 통해 동거 사실만 신고하면 육아, 교육 등에서 결혼한 부부와 동일한 혜택을 얻을 수 있다.

롤렁은 “아이를 낳고도 이혼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며 “굳이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팍스를 선택하면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데 지장이 없다”고 말한다.

불어 강사인 컹디(31·여)와 고가구 제작자 로렁(30) 커플도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결혼에 자신들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회적 결합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말한다.

일찍부터 동거 문화가 자리 잡은 프랑스에서는 결혼을 한 부부에게 각종 세제 혜택이 주어지지만 결혼율은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다. 굳이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사회적 차별이나 편견에 시달리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99년부터 동거부부뿐만 아니라 모자가정·동성(同性) 커플 등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해 법적 지위를 보장하고 있다. 팍스라고 불리는 이 제도의 도입 이후 다양한 ‘대안가정’도 육아·세제 혜택 등에 있어서 일반가정과 동일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