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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공동조사, 해법은 '동상이몽'?

천성산 환경영향 공동조사 결과, 해법은 '동상이몽'?

미디어다음 / 김준진 기자


 “터널 공사는 주변 습지와 지하수, 생태계에 특별한 영향을 주지 않는다. 난지도 침출수가 저투수성 암반 1m를 뚫고 내려오는 데는 몇 백 년이 걸린다. 무제치늪도 마찬가지다. 무제치늪은 특히 원효터널과 900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 수리적 연결성이라는 학문적 용어를 일반인들이 착각해서는 안 된다”(사업자측)

“터널 공사로 인한 지하수 유출과 고층습지의 투수, 생태계 훼손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명확하다. 원효터널 공법 자체가 애초부터 물이 빠지는 것을 전제로 한 배수공법이었다. 무제치늪 대신 대성늪을 조사한 결과도 늪의 물이 지하로 침투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사업자측이 2003년 실시한 조사 결과는 거짓이다”(환경단체측)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구간 터널 공사로 인해 지하수 유출과 고층습지의 훼손이 일어났는지, 또는 그 같은 일이 가능한지에 대해 한국고속철도공단(이하 공단)과 천성산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의 의견이 여전히 엇갈렸다.

28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공단과 대책위는 지난해 3개월 동안 환경영향평가 공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고속철도공단과 천성산대책위로 구성된 천성산 환경영향평가 공동조사단이 지난 조사결과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양측은 '지하수 유출 및 고층습지 훼손 여부'에 대해 여전히 다른 해석을 보였다.[미디어다음 = 김준진]

이 자리에서 양측은 지하수, 구조지질, 암석역학, 지구물리, 생태계 5개 분야로 나눠 조사했던 결과를 일부 합의해 발표했다. 생태계 분야는 발표 직전까지도 합의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합의했다는 4개 분야에 대해 양측 정책위원이 각각 발표한 세부 내용들은 이들의 합의가 결국 ‘동상이몽’임을 드러냈다. 천성산 공사현장을 통해 밝혀진 일련의 사실들은 합의하되 이를 토대로 한 앞으로 현장 상황에 대한 예상과 대책은 서로 달랐다.

"2003년 공단측의 조사결과는 거짓, 산지늪의 지하 유입 가능성 확인"
"한국 미기록 8종도 새로 발견..환경부의 생태계보전지역 재조사 필요"


대책위측 서재철 정책위원은 “제한적인 3개월 동안의 조사였지만 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조사결과와 상이했다”며 “지난 2003년 공단측이 대한지질공학회에 의뢰, 조사했던 보고서에서는 ‘지하수 유출이 미비하거나 습지의 투수성 여부가 없다’고 한 것은 거짓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원효터널 인근 계곡물이 말라버린 대신 터널의 사갱 배수로에서는 공사 중 발생한 지하수를 지속적으로 배출하고 있다. 이 물은 공사현장의 시멘트 등이 섞여 있어 농업용수로도 사용하기 어렵다. 사진은 지난 공동조사기간 중 찍은 것으로 장소는 경남 양산시 소주리 구간의 사갱 지하수 배출구. [사진=녹색연합]
서위원은 이에 대한 근거로 ▲원효터널 공법 자체가 처음부터 배수공법이었고 최악의 경우 분당 1톤의 지하수 유출 가능성이 있는 점 ▲ 무제치늪의 대체 조사지였던 대성늪이 투수성을 가지고 있었고 물의 지하 침투가 확인된 점 ▲ 최근 3사갱 부근인 경북 양산시 대동읍 대동아파트의 지하수 감소로 인한 민원 제기 사실 등을 들었다.

서위원은 “원효터널은 산맥을 횡 방향이 아닌 종으로 따라 내려가는 세계적으로 아주 드문 경우이다”며 “이 과정에서 터널은 9개의 단층과 교차하고 이 때문에 지진 등 자연재해로 인한 지반붕괴 및 안전사고의 위험도 크다”고 주장했다.

양측이 합의하지 못한 생태계 분야에 대해서도 서위원은 “환경부가 생태계보전지역으로 무제치늪을 지정할 당시 조사가 너무 허술했다”며 “천성산 고층습지 수서생태계는 국내에서도 가장 독특하고 희소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서위원에 따르면 이번 조사 과정에서 한국 미기록종이 8종이나 새롭게 발견되기도 했다.

서위원은 또 지난번에는 아예 빠져있었던 어류 항목에 대한 조사결과, 한반도 고유어종이 6종 발견돼 수질과 수량의 변화가 생기면 이들이 생존에 치명적인 악영향이 될 것으로도 전망했다.

"터널 공사는 습지와 지하수, 생태계에 영향 안 미쳐"
"터널 내 안전성은 추후 조사 및 조치 예정"


이 같은 대책위측의 의견과 달리 공단측은 지난 2003년 조사 결과의 입장을 견지했다.

배용득 정책위원은 “원효터널 공사가 천성산 구간의 습지와 지하수, 생태계에 특별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추후 공사 시행과정에서 예상되는 부분적인 우려 사항에 대해서는 적절한 보완조치를 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공단측이 조사결과를 요약한 자료화면. 공단측은 "무제치늪과 지하수의 연관성은 거의 없다"고 단언했다. [미디어다음 = 김준진]
배위원은 “천성산 지역은 기반암 조사 결과 투수성이 매우 낮은 저투수성 암반으로 구성돼 있었다”며 “수평이격거리가 900m인 무제치늪, 398m인 대성늪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단언했다.

이어서 배위원은 “단층과 지하수의 변화 등을 설계에 이미 반영해 터널의 안정성은 문제가 없다”며 “터널 내 낙반 발생 가능성도 사전조사를 통해 별도의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고 밝혔다.

다만 생태계 분야에서 배위원은 “무제치늪은 지하수의 용출보다 천연 강수에 따른 지표수에 의해 유지된다”며 “습지지역의 저투수성을 고려할 때 원효터널 공사시 터널로 유입되는 지하수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해 대책위와 정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대책위 "앞으로 지속적인 조사 필요" VS 공단 "이미 대부분 설계에 반영돼"

이번 환경영향평가 공동조사 결과에 따른 향후 대책에 대해서도 서로 입장이 달랐다.

대책위측은 지난 2003년 조사와 다른 새로운 결과가 많이 밝혀졌기에 이 구간의 설계변경이 필요하고 지속적인 조사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책위측은 환경부가 지정한 생태계보전지역인 무제치늪에 대한 정밀한 재조사도 요구했다.

반면 공단측은 이미 대부분 설계에 반영돼 있는 상황이기에 터널 내 낙반 위험 등에 대해서만 추가조사와 대책이 필요하다는 처지다.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이 구간의 공사는 양측의 합의에 따라 계속 진행되고 있다.

한편 양측은 이번 공동조사 결과를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공사 착공금지 가처분’ 건과 관련해 제출할 예정이다. 앞으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주목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