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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만지는게 병신이지...여자가 밤늦게 술은 왜...

"못 만지는게 병신이지...여자가 밤늦게 술은 왜"
최연희 의원의 '동아일보 여기자 성추행 사건'이 전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지만 그의 지역구인 동해·삼척시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특히 동해시 지역 유지들을 중심으로 한 최 의원의 지지기반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한나라당'이라는 글귀를 가린 채 새로 걸린 최연희 의원 지역구 사무실 간판. ⓒ민주노동당 동해시당



3일 동해에 도착해 지역 주민들과 얘기를 나눴을 때만해도 "안타깝지만, 명백한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사퇴해야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동해 시내에 위치한 최 의원의 사무실 근처에서는 '결백' 내지는 '용서론'을 꺼내들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언론에서는 곧 임박한 듯 보이는 최 의원의 사퇴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사퇴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8일까지만 해도 '한나라당 최연희 국회의원 사무소'라고 적혀있던 간판이 '국회의원 최연희 사무소'로 일부 수정된 채 버젓이 걸려있었다. 일부 주민들도 "간판까지 바꾼 걸 보면 사퇴는 사실상 물건너 간 것 아니냐"고 말했다.

만남 1 - 최연희 의원의 지인들 "그 사람만한 사람이 없어"

이러한 주장은 최 의원의 지인이거나 지지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기자라면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라는 그의 사무실을 운 좋게 들어갔을 때는 지인을 자처하는 60대의 어르신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최 의원과 관련된 뉴스가 나올 때마다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 사람만한 사람이 없어. 어렸을 때부터 을매나 착하고 남 위할 줄 알고 좋은 사람인데, 강원도의 인물이야. 이런 사람을 나가라고 하면 안되지."

맹목적인 믿음을 보이는 이들은 최 의원의 학교 동창과 조카 및 기타 지인들.

나중에 합류한 비교적 젊은 나이의 지지자는 "이봐 기자님, 의원님이 숨어 있는게 아니고 미친 광풍이 부니까 어찌 할 수 없는 거지. 우리가 차라도 빌려서 서울로 당장이라도 올라가고 싶지만 그 분한테 누가 될까봐 하지도 못하고 화만 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사실 술 먹고 취하면 집에 가는 길에 여자가 서있으면 '내 아내가 마중나왔나 보다'하고 부인으로 착각해서 끌어안을 수도 있고 그런 것인데 겨우 그런 일 가지고 동해시민이 뽑아준 사람을 나가라 마라 하는 것이 말이 되요?"라고 반문하기까지 했다.

이들은 좀 더 사태 추이를 지켜본 후 본격적인 사퇴반대 서명운동은 물론 서울 진격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만남 2 - 동해에서 만난 자칭 지역 사회단체장들 "그거 좀 만졌다고..."

최 의원의 한 지인의 소개로 최 의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지역단체장'들이 모여 있다는 자리에 동석할 수 있게 됐다. 이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억울하다"며 사퇴에 대한 여론이 거세질 경우 '강원도 전 지역에서 동아일보 불매운동'과 '최연희 의원 의원직 사퇴 반대 서명운동'을 벌여나가겠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강원도 지역의 사회단체장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재향군인회 회장, 장애인 연합회 회장, 강원도 로타리 총장(예정자), 68개 교회 연합 목사 전 회장, 체육회, 청년회, 레슬링, 배드민턴, 축구협회 회장 등으로 사회단체장이라기 보다 지역 유지들이라고 하는게 더 정확해 보였다.

이들은 "언론에서 최 의원을 파렴치한으로 몰고 있다. 잘못한 것이 있더라도 사퇴여부는 시민의 몫이지, 사퇴는 안된다"고 주장하면서 한나라당 지도부의 사퇴 압력에 대해서 매우 불쾌한 기색이었다.

얼큰하게 취한 모습으로 자신을 목사라고 소개한 사람은 "그거 좀 (만져달라고) 기다린 거 아니냐"라며 "막말로 누가 본 것도 아니고 여기자가 거짓말하는지 어떻게 알아"라고 성을 냈다.

"여기서 장애인 6,000명만 들고 일어나면 당사 다 부숴버릴 수도 있다"고 거들고 나선 한 관계자는 "이렇게 해놓고 다음에 한나라당이 당선될 수 있을 것 같냐? 선거 준비하는 사람들 중에는 무소속으로 나가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한나라당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재오가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지나 잘하라 그래라. 밖에서는 친박-반박 싸움을 붙이려고 하는 거 아닌가 싶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음모설까지 제기하는 이들은 동아일보와 그 배후세력의 음모에 의해 '착하고 깨끗한' 정치인 한 명이 희생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깃발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동해시에서 만난 단체장들은 지방선거 공천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이면서도 자신들은 한나라당 당원도 아니고 당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라는 묻지도 않은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혹시 '밤문화'에 익숙한 남성들이라 최 의원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자리에 동석한 여성의 얘기를 들어봤지만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여자가 잘못된 것 아니냐? 늦은 시간까지 왜 남아서 술을 마시나. 웃긴다"고 말하는 그에게 넌지시 "일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는데, 저희 엄마도 제가 술자리 가서 그런 일 당할까봐 기자를 그만두라고 하시더라구요. 딸 키우시면 한편으로 걱정되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이러한 물음에는 잠시 망설이던 그는 "원래 남자들이 그러잖아요. 자기가 조심을 해야지. 결혼도 했다고 하던데 그거 좀 만졌다고 그렇게 크게 만들 일인지..."라고 말을 흐렸다.

한나라당과 동아일보의 권언유착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질문을 해보았으나 "정치인이 술도 좀 마실 수 있는 것이지, 잘 부탁한다고 격려 차원에서 술 좀 산 것을 가지고 욕 하는게 더 말이 안된다"는 답변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만남 3 - 삼척시 한나라당 당원들 "못 만지는게 병신"

4일 다시 사무실을 찾았다. 지난 밤 지역 단체장들의 저녁 모임 결과가 반영이라도 된 듯 삼척시에서 관광버스까지 대절한 한나라당 당원들이 최연희 사무총장의 사무실로 밀려들었다.

이들이 사무실로 들어가는 문 앞에는 민주노동당 동해시 당원들이 '최연희 의원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사무실을 방문한 한나라당 당원들은 민주노동당 당원들을 향해 "못 만지는게 병신이다"라고 노골적으로 최 의원을 옹호하고 나서거나 "왜 여자가 밤늦게까지 그런데서 술을 먹어"라고 성추행의 책임을 여기자에게 전가하기도 했다.

일부 아주머니들은 "우리 남편은 그 보다 더한다. 왜 그게 문제가 되나"라고 반문하거나 "동아일보 기자한테 물어 봤냐"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래도 '성추행'한 의원을 옹호한다는 것이 다소 부담스러웠던지 대부분 여성들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재빠르게 민주노동당 당원들 앞을 지나 사무실로 사라졌다.

이들의 주장은 원래 남자들이 술 마시면 그 정도 스킨쉽은 예사인데 문제를 삼는 것이 더 이상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성폭행을 당한 것은 여자가 꼬리를 쳐서라거나, 억제할 수 없는 남자의 성욕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 성폭행을 저지른 남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일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여성이 스스로 조심하는 것 뿐.

이날 사무실을 방문한 이들은 대략 40대 후반의 80여명이었다. 이들 중에는 최 의원의 단순 지지자 뿐만 아니라 삼척, 동해시의 지방선거 공천신청자 15여명의 얼굴도 볼 수 있었다. 노골적으로 "얼굴 도장 좀 찍으러 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 최 의원에 대한 '결백'운운 하는 최 의원 지지자들의 속내가 무엇인지 짐작케 했다.

/ 정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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