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 보기

한국의 '달동네' 색바꾸면 그리스?

한국의 달동네도 ‘색’ 잘 쓰니 그리스의 휴양지 같네?
[조선일보 남승우 기자]

튀는 색의 페인트를 아무렇게나 칠한 부산의 대표적 달동네 사하구 감천 2동. 이 형형색색의 독특한 풍광을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경치를 가진 그리스 산토리니(Santorini)와 비교하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산토리니는 산뜻한 흰색 건물 벽면과 파란색 지붕, 앞으로 마주한 푸른빛 바다, 그리고 새파란 하늘의 조화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이야기되는 곳. 이온 음료 광고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한국의 달동네가 그곳과 견줄만 하다니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다.



두 곳이 어깨를 견주게 된 사연은 ‘아카시아(네이버 아이디 jinsub0707)’라는 한 네티즌이 블로그에 올린 글이 계기가 됐다. 달동네인 감천 2동의 사진과 그리스 산토리니의 사진도 함께 올렸다. 이 네티즌은 “지금도 나름대로 멋진 풍경이지만 조금만 더 계획적인 모습으로 바뀐다면 그리스 산토리니가 부럽지 않을 듯 하다”고 말했다. 얼핏 보면 튀는 색들이 정말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이 네티즌이 감천 2동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실은 월간 건축잡지 ‘포아(poar)’의 작년 4월호를 통해서 였다.

‘포아’에 따르면, 감천 2동은 해발 120m의 남향 고지대로 바다를 마주 보고 있다. 이곳은 산으로 둘러싸여 지형적으로 다른 지역과 단절되어 있다. 또한 6.25전쟁 때 ‘태극도’라는 종교의 신자들이 이주하면서 일종의 집단 신앙촌 성격도 갖게 됐다고 한다. 1916년 ‘무극도’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태극도는 1955년 감천동으로 본부를 옮겼다.

저소득층 밀집지역인 이 곳 주택들은 집주인들이 각자 자신의 필요와 개성에 따라 집을 지었다. 전체적인 외관을 고려한 마을 주민들의 계획이나 협조같은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곳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집의 색깔 선택에 나름대로 개성을 발휘했다. 분홍색, 노란색, 감청색, 녹색…. 이런 색깔들이 모여 강렬한 인상을 주는 하나의 질서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포아의 얘기이다.

이런 비교에 대해 네티즌들은 “원색적인 색채가 포카리스웨트 (광고에) 나오는 그 뒷배경 하얀 곳을 능가한다(df_architect)” “저도 보고 놀란 적이 있다(빈잔)” “와, 색깔을 더 부드러운 색으로 했으면 더 예뻤을 듯 하다(유령)”며 놀랍다는 반응들을 보였다.

“내가 보기엔 달동네로 밖에 안 보이는데…그걸 미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숨겨진 슬픔이 너무 크지 않나?(메테우스)”는 현실론도 적지 않았다.

산토리니의 경우는 에게해(Agean Sea) 연안의 섬으로서 내륙과 분리되어 있다. 서쪽은 깎아지른 절벽이고 동쪽은 완만한 경사지다. 앞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 산토리니의 길들은 바둑판처럼 짜여진 유럽의 거리나 골목과 다르다. 오히려 우리나라 산동네 주택가의 꼬불꼬불한 골목길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집들은 눈처럼 새하얀 벽면에 진한 파란색 지붕으로 나름대로의 질서를 이루고 있다.

감천 2동은 마감재 비용이 부족한 주민들이 페인트칠로 적당히 집 단장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곳이다. 산토리니 역시 그 지역의 기후와 풍토에 맞추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금의 모습이 됐다. 적어도 그런 점에서는 두 지역이 비슷한 것도 같다.

(남승우기자seraphc@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