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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위의 소록도'에 갇힌 사람들

'육지 위의 소록도'에 갇힌 사람들
그들의 인권은 어디에...한센병 환자 접촉한 의료인중 감염 사례 없어
미디어다음 / 조혜은 기자
 
돈이 있어도 식당에서 밥을 사 먹을 수 없는 사람들, 버스나 열차를 타면 강제로 끌어 내려지는 사람들, 목욕탕에는 아예 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이발소도 가지 못해 서로 이발을 해주며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 시대 대한민국 한센병 환자들의 일상적 모습이다. 한센병이란 오랜 시간 동안 나병으로 불려왔던 병이다. 나병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하늘이 내린 형벌(천형)’ ,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무서운 전염병’ 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한센병 환자들은 오랜 시간 동안 사회와 격리돼 살아왔다. 그리고 이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 11일 오후 대한변호사 협회 인권위원회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센병 인권보고대회’ 가 열렸다. 한센병 환자들이 가진 첫번째 대외적인 공개 행사였다. 이날 대회에서는 한센병에 대한 소개, 한센병 환자들의 인권 침해 사례 및 개선방향 등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다. 한센병 환자들은 사회와 동 떨어져 큰 고통 속에 살아왔지만 실제로 한센병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만큼 심각한 전염병이 아니다.


우리사회의 ‘이방인’으로 온갖 차별 받으며 살아와
 
일제시대 지어진 소록도병원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교통사고를 당해 종합병원에 입원했습니다. 6인실 병동에 입원했는데 방에 함께 입원하고 있던 다른 환자들이 한센병 환자와 한 방에 같이 있을 수 없다고 병원 측에 항의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응급치료만 받고 퇴원해야 했습니다.”

11일 열린 한센병 인권보호 대회에서 소개된 한 한센병 환자의 사례다. 한센병 환자들이 겪어왔던 사회의 차별은 이 뿐만이 아니다. 한센병 환자들은 그 동안 사회와 철저히 격리돼 살아왔다. 한센병 환자들은 일제시대부터 1960년대까지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국립소록도병원에 강제 격리 수용되어 지냈다. 1960년대 강제 격리 정책은 사라졌지만 정부는 환자들에게 전국의 87개의 정착촌에 살 것을 권장했다. 정착촌은 결국 또 ‘육지 위의 소록도’ 였던 셈이다. 한센병 환자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은 한센병 환자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차별은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아이들은 ‘미감아’라고 불립니다. 아직 한센병이 발병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발병할 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한센병은 유전이 아니고 정착촌에 살고 있는 병력자 2세 중에 한센병에 감염된 아이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정착촌에 있는 아이들은 인근초등학교에 갈 수 없습니다. 학교의 다른 부모들이 반대 대모를 하기 때문입니다. 본교에 다니게 된다 해도 극심한 따돌림에 시달립니다. 이런 일을 겪은 자녀들은 부모를 수치의 대상으로 생각하며 자랍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부모를 떠나 절연하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2세들은 고아 아닌 고아가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2세들은 결혼식 전날 부모를 찾아와 다음날 결혼식이 있음을 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순간 부모와 자식은 눈물바다를 이루며 통곡합니다.”

 
“한센병은 전염 가능성이 상당히 낮은 질병”
 
그렇다면 관연 한센병은 이처럼 극심한 차별을 받으며 살아야 할 만큼 심각한 전염성을 가진 병일까. 이날 회의에 참가한 카톨릭 대학교 한센병 연구소장 채규태 교수는 “한센병은 전염예방법상 가장 낮은 단계의 전염력을 가진 3군 전염병으로 전염력이 극히 미약하다” 며 “우리나라에서 한센병 환자들과 가장 접촉이 많은 의사나 간호사 중에도 한센병에 걸린 사람은 없다” 고 말했다.

채 교수에 따르면 한센병은 전염병 가능성이 상당히 낮은 병이다. 한센병 환자들은 리팜피신이라는 치료제를 단 한번만 복용해도 나균의 99.99%가 살균되어 전염력을 잃게 된다. 또 일반인의 95%이상이 한센병에 대한 항체를 가지고 있어 한센병 환자와 접촉을 해도 전염될 가능성이 상당히 낮다. 이는 대부분의 아기들이 맞는 결핵예방주사(BCG) 덕분이다. 결핵균은 나균과 비슷한 특징이 많아 이를 접종하면 나균에 대한 항체도 생기게 된다는 것.

2003년 말 현재 한센병으로 등록된 환자는 1만 6801명이다. 이 중 한센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518명에 불과하고 대다수인 1만 6283명은 병이 모두 완치된 사람이다. 한센병은 항나제 복합요법 (MDT)으로 1-2년 정도 치료를 받고 나면 100% 완치될 수 있다. 병이 모두 완치된 환자는 당연히 병을 옮길 가능성도 없다. 또 우리나라에서 매년 새롭게 발생하는 환자는 약 20명 정도다. 인구 약 4800만 명 중 20명이면 발병률은 240만 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한센병은 전염병이지만 전염성이 아주 약하며 크게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센병은 항상 다른 전염병에 비교해 심한 차별을 받아왔다. 결핵은 한센병에 비해 전염력이 2000배(한 해 발생하는 환자 수 기준)가 넘는다. 그렇지만 결핵 환자들은 완치가 된 뒤 사회에 복귀하는 것이 어렵지 않고 완치가 되면 그들을 더 이상 결핵환자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한센병 환자들은 완치가 되었다고 해도 사회로 복귀가 어렵고 여전히 ‘한센병 환자’라고 불린다. 채 교수는 “한센병 환자들이 사회적으로 심한 차별을 받은 것은 병이 진행되면 감각신경와 운동신경이 손상돼 손과 발의 변형을 가져오기 때문” 이라며 “이렇게 변형된 손과 발은 쉽게 눈에 뜨여 완치 후에도 환자로 오인 받게 된다” 고 말했다.

 
국민기초생활보호법 적용 받지 못하고 장애인 등록도 안 돼
 
'마음의 벽을 허물어야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와 대한한센복지협회가 만든 포스터. [사진=대한한센복지협회]
한센인(한센병 환자와 한센병 병력자를 통칭)들이 고통 받는 것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만은 아니다. 이렇다할 사회제도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한센인 평균 연령은 65세다. 대부분 경제력도 없지만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수급권자가 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운동신경이 손상돼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장애인으로도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

소록도 같은 보호소에서 생활하는 한센인은 의식주를 제공받고 있기 때문에 이중으로 복지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한센병 인권 소위원회’ 위원장 박찬운 변호사는 “이러한 적용은 한센인의 현실을 외면한 것” 이라며 “이들이 의식주를 지원 받고 있는 것은 스스로가 원해서 라기 보다 오랫동안 지속된 격리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즉 보호소에 살고 있다는 것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적용이 안 되는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호소에 살고 있지 않은 한센인들도 적용 대상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착촌에 살고 있는 환자들은 ‘집도 있고 자식도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센병 환자 자활단체 한빛복지협회 임두성 회장은 “정부가 정착촌을 만들면서 지은 집에 들어가 살고 있는 것 뿐인데 그 집을 개인 재산으로 보고 또 자식과 연락을 끊고 지내는 사람이 많은데도 주민등록에 자식이 있다며 수급자로 인정해 주질 않는다” 고 하소연했다.

한센병 환자들이 장애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박 변호사는 “현행 장애인복지법시행령 및 시행규칙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한센인이 장애인으로 분류될 수 있는 장애인 종류는 지체장애인과 안면장애인이지만 그 규정이 까다로워 적용이 되지 않는다. 박 변호사는 “지체장애인은 대체로 손발의 절단을 요구하는데 한센인의 손발은 외형상 크게 다르지 않고 기능만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적용이 되지 않는다” 고 말했다. 안면장애인 역시 시행 규칙은 화상 등을 입어 안면이 완전히 변형된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한센인은 ‘장애인’이 될 수 없다.

박 변호사는 소록도 병원 운영의 문제점과 중앙 등록제도의 문제점도 함께 지적했다. 현재 소록도는 병원관련 시설과 취락마을로 나눠 볼 수 있는데 문제는 소록도 전체를 병원 시설로 보고 병원장에게 섬 전체의 관할권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완치되어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소록도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도 육지에 나가거나 육지의 사람이 방문을 하려면 이 사실을 병원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2년 전까지는 허가를 받아야 했다.

또 한센병 환자들은 전염병예방법상 제3군 전염병으로 관리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병을 발견한 의료인은 이를 관할 보건소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한센병은 이러한 보고 외에도 철저한 중앙등록제도로 한센인을 발병 이후부터 죽을 때까지 등록해 관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소록도국립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 환자는 이곳을 나오게 되더라도 자신이 거주하는 곳의 자치단체장과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퇴원여부와 동향을 통보해야 한다. 즉 한센병 환자들은 완치가 되었다고 해도 전국 어디를 가서 살더라도 행정관청에서 그들의 신분을 파악할 수 있다. 결국 살고 있는 지역사회에서 그들이 한센인임을 알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물론 이 제도는 효율적인 환자 관리와 치료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며 “그러나 이는 환자들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고 한센병이 더 이상 심각한 질병이 아닌 이상 이 제도를 유지할 필요성이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한센병에 대한 교육과 한센인에 대한 복지제도 개선 필요
 
이날 인권보고대회에서는 한센병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으려면 한센병에 대한 정확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 변호사는 “학교 교육을 통해 한센병이 일반 질병에 비해 특수한 질병이 아니라는 것을 교육해야 한다” 며 “이런 교육을 통해 완치된 환자들이 자연스럽게 사회로 돌아와 함께 생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빛복지협회 임두성 회장은 “오랜 시간 격리정책으로 고통 받으며 살아왔는데 사회적인 제도에서까지 차별 받아야 하는 것은 부당하다” 며 “우선적으로 기초생활보장법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장애인으로 등록 될 수 있도록 해 일반 국민들이 받고 있는 복지 혜택을 한센인들도 똑같이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이날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역사적인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발표한 대한변호사협회 장완익 변호사는 “그 동안 역사적으로 많은 인권 침해를 당해온 사건들의 진실을 규명하고 한센병과 관련한 국가적차원의 연구조사를 지원하기 위한 한센병특별법이 마련돼야 한다” 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