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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가게 누나는 탤런트

우리 동네 가게 누나는 탤런트
[도깨비 뉴스]

독자 '한삶친구들'님이 "우리 동네 누나는 탤런트(^^)"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은 제보를 했습니다. 
 
홈피 주인께는 미리 말씀 못드리고 퍼왔습니다, 만약 소개가 된다면 그쪽에 먼저 동의를 구해주세요.
연예계 소식이라면 의례 온갖 썰과 까십이 난무하잖아요, 그런데 이건 내용이 풋풋한 것 같아서요.  

'한삶친구들'님이 알려준 사이트를 찾아가 글을 올린 'uken'님과 이야기의 주인공인 '이주화'님으로부터 도깨비 뉴스에 소개했도 좋다는 양해를 얻었습니다. 'uken'님이 올린 '우리 동네 누나는 탤런트'라는 제목의 글을 소개합니다.



지하철 4호선 삼선교(한성대)역 6번 출구를 나오면 신선한 과일향이 커피향과 함께 코끝을 간지럽히는 생과일 아이스크림 가게가 새뜻하게 보인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나들목에 위치하기에 동네에서 자주 가는 단골집이 되었다.

직접 생과일을 갈아 꿀을 섞어 아이스크림을 만드는데 달보드레하니 맛있다. 과일 뿐만 아니라 고구마, 옥수수, 치즈, 요구르트, 밤 등으로도 만드는데 그 본래의 맛을 지닌채 잇몸을 시원하게 간지른다. 아이스크림의 종류가 십 수 가지다 보니 때로는 무얼 먹을까 잠시 골라먹는 고민에 빠지게도 한다.

그 가게는 싱싱한 맛 뿐만 아니라 탤런트처럼 예쁘게 생긴 주인 누나가 매력적이다. 차분한 저음의 목소리가 손님을 편안하게 해주고 평범한 옷이지만 산드러지게 받쳐있는 맵시가 훌륭하다. 그래서 그곳에 가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간단한 일상의 이야기도 나누며 동네사람의 한 명으로 편하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텔레비전에서 KBS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부부사이의 갈등에 대한 주제였는데 여자 주인공의 얼굴이 무척 낯이 익었다. 누구지? 어디서 봤더라?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텔레비전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는데, 아이스크림 가게 누나의 얼굴과 교차를 했다.

앗, 아이스크림가게 누나! 설마? 그런데 여자 배우의 낮은 목소리를 들어보니 확실히 맞는것 같았다. 동네 사람중에 탤런트가 있었다니, 아이스크림 가게 누나를 보면 남다른 감각과 속멋이 있는 건 알았지만, 텔레비전에 나오는 진짜 연기자였다니... 마냥 신기할 따름이었다.


▲ 생과일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그녀가 배우?


저녁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잉큼잉큼 뛰는 가슴을 안고 생과일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렀다. 그녀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상냥한 얼굴로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던 나는 일단 궁금증을 풀기로 했다.

"누나, 어제 텔레비전 나온거 잘 봤어요" 말없이 고개를 살포시 숙이는 그녀, '헉!! 아닌가? 목소리를 들어보니 확실하던데'

"맞죠?... 연기가 훌륭하던데요!!!" 용기를 내서 다시 물었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던 그녀는 살며시 웃으며 "맞다"고 응답해 주었다. "진짜 탤런트 맞아요?" "네, KBS 93년 공채출신이랍니다."

연예인이 가게를 열면 사진이나 사인 등으로 자랑질하듯 장식하기 마련인데, 가뭇없고 풋풋한 과일 냄새와 커피향만 풍기고 있었으니 짐작조차 못했는데 사실이었던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태완(왼쪽)과 혜연, 이주화가 촬영으로 가게를 비우면 장사를 책임지는 믿음직스러운 동생들


가게는 왜 하는거예요?

사실 유명한 배우가 아니면 연기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는 힘들잖아요. 그래서 많은 연기자들이 음식점이나 카페와 같은 부업도 하고 아니면 다른 직업과 병행하기도 해요. 대부분 다 그렇게 하죠.

그러면 아이스크림 가게를 선택한 이유는요?

아이스크림을 좋아해요. 음식점은 솔직히 자신이 없어서 못하겠더라구요.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만드는게 즐거워요. 조카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데, 제가 좋은 재료로 깨끗하게 만들어 주면 탈없이 잘 먹어요. 그런 모습을 보는게 행복하더라구요. 음식가지고 장난치는 사람이 제일 싫어요.

연기를 전공했나요?

아니요, 원래는 미술을 공부했어요. 그래서 처음에 연기할 때는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연기나 미술이나 백지에 그림을 그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은 똑같아요. 그래서 지금 돌이켜보면 미술을 공부한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대본을 받으면 백지에 그림이 그려지듯 콘티가 만들어지기도 하구요.



아이스크림 가게를 하는게 연기생활에도 도움이 되나요?

그럼요, 가게를 시작할 때는 힘든 점이 많았고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책임도 컸어요. 하지만 장사를 하면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구요. 성격이 내성적인 편인데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면서 나 스스로도 많이 배웠어요.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는 집하고 촬영장 밖에 몰랐는데 가게를 하면서 세상에 대해 조금은 배운 것 같아요. 간장 종지만하던 제 그릇이 그래도 밥공기 정도로는 커진것 같아요(^^).

인기가 많은 연기자를 보면 부럽지 않아요?

처음에는 많이 부러웠죠. 하지만 주변에서 무리한 욕심을 부리면 문제가 생기는 걸 많이 봤어요. 특히 신인 배우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며 실패하는 경우도 종종 있잖아요. 그래서 기회가 적다고 속상해하지 않았어요. 작은 역할이라도 주어진 배역에 충실했어요. 그리고 맡은 연기를 열심히 하다보니까 그곳에서 맺어지는 관계들이 또 다른 길을 열어주더라구요.

그래도 아주 유명한 배우가 되지 못해 서운하지 않아요?

10년, 20년 열심히 연기생활을 하다가 유명해 지는 사람도 있잖아요. 저도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 더 잘 될 수 있다는 희망은 있어요. 그리고 오랜 무명세월을 보내다가 갑자기 유명해진 연기자도 끊임없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뜰 수 있었던거죠. 배우는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면 본인이 힘들어요. 저또한 스스로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만족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이주화'라는 배우를 몰라줘도, 텔레비전을 보면서 채널을 돌리지 않고 "저 연기자 잘 하는구나"라고 봐주는 것으로 충분히 기뻐요.

아이스크림 가게는 계속 할 거예요?

그럼요. 돈을 많이 벌어야 하거든요. 나중에 조그만 소극장을 하나 마련하고 싶어요. 저도 연극무대에 서고 있지만 연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그들이 연기를 할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그들에게 연기를 펼칠 무대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럼 돈 많이 벌어야겠네요?

네, 그래서 열심히 벌고 있어요(^^)

연극무대에서 연기하는 건 어때요?

TV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보다 연극무대에서 연기하는 쪽이 더 진실한 것 같아요. 연극은 두달, 세달 연기를 계속하면서 배역을 맡은 인물에 완전히 동화되어 가거든요. 그래서 거짓 연기가 힘들어요. 관객으로부터의 반응도 바로바로 오구요. 돈은 방송쪽이 더 되지만 연극이 훨씬 인간적이고 더욱 진지하게 연기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아이스크림가게 누나는 연예인이 아닌 한동네 등을 맞대고 사는 친근한 이웃처럼 상냥하고 사분사분하게 나의 궁금증에 대한 답변을 성심껏 해 주었다.



동네라는 곳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있는 곳이고 서로 만나면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담을 낮추며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고가는 동네사람들이 모여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쉬어가는 생과일아이스크림 가게는 동네에서 편안한 소극장과 같은 무대였다.

물론 그곳의 주인이 탤런트였다는게 조금 놀랄 만한 일이 되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인생이 무대에 올려진 한 편의 연극이라면 아이스크림 가게는 동네사람들과 배우 이주화의 작은 공연이 매일같이 열리는 곳이다. 배우들을 위한 무대를 소망하는 그녀는 이미 생과일아이스크림가게라는 작은 소극장을 가지고 있었다.



흔히 탤런트라고 하면 텔레비전의 연예프로그램을 소란스럽게 장식하는 그런 배우들을 쉽게 떠올리지만 텔레비젼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의 캐랙터는 대부분 주변에서 접하는 평범한 소시민이며, 드라마의 내용 또한 소시민이 울고 웃는 일상의 내용이 많다.

그렇다면 아이스크림을 만들기 위해 새벽시장에서 발품을 팔며 신선한 과일을 구입하고, 새로운 아이스크림을 만들기 위해 밤새 연구를 하며, 또한 가게를 찾는 많은 사람들과 생활을 공유하는 사람이 하는 연기라면 더욱 실생활에 가깝지 않을까?

배우 이주화는 올차게 말했다. "연예인도 손톱에 때가 낀다"고... 그렇다 생활속에서 당알지게 살아가는 사람의 손톱에는 때가 낀다. 배우의 삶과 경험은 연기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작은 배역이라도 마지막 작품처럼 최선을 다한다는 그녀의 연기에서 "그렇지" 하고 무릅을 '탁' 치게 하는 살아있는 연기를 기대해 본다.

앞으로 아이스크림을 더 자주 사먹게 될 것 같다. 소극장을 사는데 일조해야 하니까(^^)//

도깨비뉴스 독자 = uken
                         한삶친구들

출처 : http://www.seventh-haven.com/bbs/view.php?id=photo_essay&page=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35